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크롬웰 (문단 편집) === 앤 불린과의 갈등 === 크롬웰과 [[앤 불린]]의 동맹이 언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. [[성공회]]가 잉글랜드의 국교가 된 후, [[가톨릭]] [[수도원]]을 강제로 해산하기 시작했다. 이 때 거둬들인 재산을 크롬웰은 국고에 돌리길 원했고, 앤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주장하면서,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. 불린 가문과 크롬웰 사이에서 왕의 측근자리를 두고 기싸움이 계속되다, 이 일을 통해 적대감이 분출되었는지도 모른다. 얼마 후인 1536년 [[앤 불린]]의 측근이 [[감사성찬례]][* [[성공회]]의 예배]에서 크롬웰을 맹비난한다. [[앤 불린]]은 이때 이미 딸([[엘리자베스 1세]])만을 낳았을 뿐 유산을 거듭하며 아들을 낳는데 실패한 상태였고, [[헨리 8세]]는 이미 앤이 아니라 그녀의 [[시녀]]인 [[제인 시모어]]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. [[제인 시모어]]는 왕이 자신을 정부로 삼으려 하자 결혼을 위해 정절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는데, 왕은 여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아마도 이 시점에서 앤과 이혼하고 제인과 재혼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.(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.) 크롬웰은 이제 시모어 가문과 동맹을 맺고 적극적으로 [[앤 불린]]과 불린 가문을 몰락시키는 과정에 참여한다. 토머스 크롬웰은 앤의 궁정에 있던 음악가 마크 스미튼에게서 앤과 부정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내는데, 이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. 마크 스미튼은 앤과 [[간통]]을 저지른 남자들의 이름을 댔는데, 앤과도 친밀하지만 왕과 친했던 여러 궁정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다. 토머스 크롬웰은 왕의 명을 받아 앤의 "부정"을 조사하는데, 이 과정에서 [[앤 불린]]의 남동생 [[조지 불린]]의 부인이었던 로치포드 부인이 "앤과 조지는 [[근친상간]]을 저지르는 사이"라고 주장한다. 이것이 앤을 결정적으로 옭아맨 죄목이 되었다. 앤의 외삼촌이자 대귀족인 하워드 가문의 노포크 공작은 조카와 사이가 틀어진 채였고, 기꺼이 앤의 몰락을 도왔다. [[앤 불린]]은 순식간에 [[간통]]과 [[근친상간]]죄로 처형을 당했다. 약 열흘 후 왕은 [[제인 시모어]]와 결혼했고, 크롬웰은 여전히 왕의 오른팔이었다. 그러나 제인은 아들 [[에드워드 6세]]를 낳은 지 얼마 안돼 [[산욕열]]로 사망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